이 글은 공개들이에요. 제가 얼마 전 패션넷코리아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꼭 읽어봐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2019년 한국 패션비즈니스가 ‘반드시 해야할’ 6가지를 담았어요. 하루에 1개씩 소개할까 해요. 6가지를 한 번에 보시려면, 패션넷코리아 전문 링크, 여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5. Z세대지향적 턴어라운드
2019년 또 하나 패션기업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턴어라운드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Z세대’ 지향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의 변화를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들이 미래의 주력소비자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이 기업의 미래 피고용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보통 기업이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 신세대를 스터디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신세대들을 고용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X세대까지는 적어도 기업이라는 공간은는 젊은 세대가 윗세대가 쌓아놓은 유산들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시기만 해도 창업은 자유롭지 않았고, 조직을 떠나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은 인생을 거는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X세대 이후의 밀레니얼 세대들과 그 아래 Z세대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X세대들의 52%가 창업을 꿈꾸고 있으며, Z세대는 무려 72%가 창업을 꿈꾸고 있다.
유발하라리는 이제 젊은 세대가 윗세대로부터 배운 지식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끝이 났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과연 Z세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판매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그들과 일하는데 성공하고 있는가?
X세대가 밀레니얼이나 Z세대를 상대로 느끼는 괴리감은 사실 무척이나 크다. X세대도 인류가 각자 처음으로 자기만의 PC를 갖게 되는 혁신 속에 자라난 세대이긴 하지만, ‘웹’이란 환경에서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와 ‘스마트폰’이란 환경에서 자라온 Z세대와 교감하기엔 그들의 겪은 혁신의 폭은 크지 않았다.
Z세대를 정의할 때 흔히 ‘스마트폰 이전의 세상을 모르는 세대’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말문을 트기도 전에 아기일 때부터 스마트폰을 스와이프하며 자라난 세대들이다.
Business Insider가 올 8월에 정리한 Z세대들의 특징은 간략히 아래와 같다.
- 모든 것이 즉각적인 환경에서 자라나 인내심은 적으나 놀라운 멀티 태스커들이다. 그들은 빠르지 않으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경제적 자립에 민감하다. HBR에 따르면 이미 약 10 %의 미국청소년은 자영업자다.
- 글로벌한 문화(Kpop, 재패니메이션 등)에 열려있으며, 자기나라의 성인들보다는 다른 나라의 글로벌한 10대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낀다.
-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민감한 세대로 환경/인권/인종 문제에 있어서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동참한다.
- 학자금 대출을 내면서까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개성을 중시한다. 특정 브랜드를 입고 과시하는 것보다는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Z세대의 이런 독립적이고 디지털친화적인 성향은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많은 10대 타겟의 패션매거진들이 폐쇄되거나 인쇄판을 중단하고 있지만, Teeneye, Superhero와 같은 잡지들은 새로 창간되어 인기리에 발매 중이다. 이들은 Z세대들이 스스로 만든 잡지들이다. Z세대들은 기존의 미디어에게 어째서 10대 잡지들을 어른들이 만드느냐고 반문한다. 뿐인가. 일본의 인기 앱 One Pay는 야마우치 타쿠로라는 고등학생이 만들어 창업했고 일본에선 아예 사회적으로도 10대의 창업을 반기고 부추기는 추세다.
이런 세대들이 주력 소비자가 되었을 때, 어떤 브랜드, 어떤 기업이 과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을까?
먼저 기업들은 Tech-savvy(최신기술에 정통한)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가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커머스 사이트나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속도와 복잡함으로는 세련되고 스마트하다는 인상을 줄 수 없다. 앞서 강조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여러 측면은 Z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부분이다.
아울러 Z세대를 상대하려면 기업들이 또 하나 중요시해야 할 새로운 덕목이 있다. 그건 바로 기업의 도덕적 밸류다. 과거에는 소비자에게만 친절한 서비스를 하면, 기업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건 상관없었다. 소비자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기업도 이 부분에선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점점 기업에게 ‘당신은 도덕적으로 어떠한가’를 집요하게 묻고 있다. 또렷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이들의 도덕성을 의심한다. 소비자의 이런 의심이 매출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놀랍게도 그러하다.
얼마 전 농심이 드디어 라면에서 오뚜기에게 추월당했다는 기사가 떴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농심과 오뚜기의 3분기 누적실적을 분석한 결과 오뚜기의 매출은 1조 6821억원으로 1조 6628억원인 농심을 앞섰다. 심지어 농심은 오뚜기에 2.4배에 달하는 판관비를 쓰고도 매출에는 뒤진 셈이다.
아직까지는 X세대와 밀레니얼, Z세대들이 소비시장에 함께 분포되어 있으므로 기업의 한두번의 실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잊혀질 수도 있지만, 근미래에는 도덕적 타격이 곧 기업의 존속을 좌우할 치명타가 될 지도 모른다.
많은 명품기업들은 그동안 브랜드 밸류를 지키기 위해 팔리지 않는 재고를 소각해왔다. 이를 할인하는 대신 스스로 처분함으로써 시장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지난 9월 버버리는 그간 수십억원 어치의 재고를 태우고 있다는 것이 대중에게 공론화되면서 소비자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버버리는 빠르게 대처했다. 그들은 소각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논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익월에는 동물복지를 위해 모피를 쓰지 않겠다는 Fur-free 선언을 했고, 10월에는 패션업계로선 선두적으로 플라스틱 근절협약을 사인했다.
지금 럭셔리 브랜드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Fur-free 선언을 하는 것, 또 많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환경관련 서약에 사인하는 건 모두 한가지 이유에서다. 차세대 주력 소비자인 Z세대의 민심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들이 원하는 도덕적기준에 부응하고 있음을 한발 앞서 보여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올 봄에 있었던 국제컨퍼런스에서 만난 한 스리랑카의 공장은 직원들에게 수준높은 복지와 높은 임금을 지불하며, 여성인권신장이나 물 부족 등 동남아 국가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돕는 Ethical 공장이었다. 그 친구들은 직원들에게 높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테크놀러지를 도입했다고 이야기했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면 같은 인원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Ethical한 조건은 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안심시켰다.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 이후 글로벌 대기업들은 Ethical 팩토리에 주문을 몰아주고 있으며,아울러 이들은 자신이 어떤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지 리스트도 공개한다. 얼마전에는 유니클로가 협력업체 리스트를 공개했다. 기업의 투명성을 세상에 한발 앞서 알리기 위해서다.
이런 요구사항들은 Z세대를 고용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Tech-savvy하지 않은 기업에서 근무하려 들 Z세대는 없다. Business Insider의 지적대로 이들은 ‘그렇게 빠르지 않으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아나로그 방식의 회의와 결재, 문서보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앞으로는 고용한 신입사원의 반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방식, 채팅, 전자결재, Paperless한 업무시스템으로 빠르게 굴러가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젊은 친구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기업의 도덕적 기준도 매한가지다. Me-too나 횡령, 상사의 갑질, 부정한 회계가 만연한 기업은 Z세대와 일하기 어렵다. 그 친구들은 그런 부정을 참고 회사와 함께 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한다.
많은 기업들이 Tech-savvy의 방향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동의하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도덕적 기준에 대해서는 한국의 패션기업들은 거의 불감증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기업들의 업무 행태는 많이 선진화되었다. 많은 패션기업들이 이미 직원들에게 무리한 노동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다. 법에 정한 임금과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고발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고용자체가 되지 않는다. 고용사이트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근무여건을 평가하며 교류하는 섹션이 마련되어 있으며 Blind라는 앱에서는 익명의 사원들이 회사 게시판을 만들고 노골적으로 비판을 나누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협력업체에 부당한 조건을 강요하다가는 협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 젊은 세대로 이뤄진 기업들은 누군가의 ‘을’이 되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당함을 널리 알려 다른 이들에게도 그들의 ‘을’이 되지 말 것을 종용한다.
이런 변화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특히 도덕적 기준에 대해서는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하나씩 바꾸어서는 답이 없는 문제다. 기업이 선명한 미래의 도덕적 철학을 먼저 그리고, 도리어 그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 나가는 것이 더 유리한 시대다. 더 늦기 전에 2019부터는 이런 문제들을 선명하게 과제로 끌어안고 턴어라운드하기 시작해야 한다.
[Abercrombie & Fitch의 사례]
Abercrombie & Fitch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사이, 미국 10대와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브랜드였다. 당시 브랜드를 이끌고 있었던 CEO Mike Jeffries는 완벽한 외모의 백인 남녀 모델을 고용해 섹시한 캠페인 광고를 찍고, 매장의 점원들도 외모지향적 기준으로 선발하기로 유명했다. Mike Jeffries는 대놓고 ‘우리 브랜드는 멋진 사람만을 위한 것이며, 과체중이나 매력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등의 논란이 될 언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당시 그의 이런 전략은 인종주의와 차별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성공을 거듭해나갔다.

Abercrombie & Fitch가 이상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는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2012년에 주가는 거의 폭락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졌다. 이제 브랜드의 고객은 X세대를 지나, 밀레니얼에서 Z세대로 옮겨가고 있었지만, Abercrombie & Fitch는 새로운 제너레이션들이 가진 사고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2014년, 이사회는 Mike Jeffries를 퇴출시켰고, 바로 그날 주가는 급등했다. 이후 Abercrombie & Fitch는 백인우월주의적 태도와 외모지향적 태도를 버리고 Z세대가 중시하는 개성과 친밀감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비쥬얼 전략을 구축했다. 현재 Abercrombie & Fitch의 재정상태는 빠르게 회복 중이며 2020년까지는 연간 2-3%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